올챙이 국수
올챙이 국수를 아시나요?
올챙이를 잡아서 국수를 만든 것은 아니니까 겁먹지 마시고요.
풋옥수수를 맷돌에 갈아서 체로 걸러낸 다음 솥에 잘 저어가면서 고면
눅진하니 묵으로 됩니다.
이것을 국수틀에 붓습니다.
국수틀은 나무로 네모지게 틀을 만들고 밑바닥은 구멍 숭숭한 철판을 붙인 것인데
원래는 커다란 바가지를 구멍 숭숭 뚫어 사용한 것이 원조입니다.
옥수수 묵은 자체 무게에 밀려서 국수틀 구멍으로 비어져 나오지요.
그 밑에는 찬물 가득한 함지가 있고요.
옥수수가 원래 끈기가 없다보니 나오다가는 곧 끊기는 모습이 올챙이를 닮았습니다.
그래서 올챙이 국수지요.
끈기가 없으므로 젓가락은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국수보다 묵에 가까운 음식입니다.
잔파 송송 썰어넣은 장물로 간을 맞춘 후 열무김치 곁들여서 먹습니다.
씹을 것도 없고, 그냥...후루룩 입니다.
여름 날,뙤약볕 아래 농삿일 하다가 잠시 쉴참에 시원한 그늘에서 먹는 올챙이 국수는 허기진 농부의 배를 잠시 달래줍니다.
올챙이 국수 한 사발에 금세 배가 벌떡 일어나지만, 먹고 돌아서면 다시 배고픈 야속한 음식입니다.
요즘식으로 말하자면 훌륭한 다이어트 식품이지만....
설악산 가는 길에 홍천에서 인제로 넘어가는 건니고개(마른진흙) 정상에 있는 휴게소에서 팝니다.
여름 음식이라, 요즘도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강원도의 음식 중 널리 알려진 것이 막국수인데,
막국수는 겨울 음식입니다.
동지 섣달 긴긴 밤에 휘영청 달이라도 밝으면, 밤은 더욱 길지요.
군불 넉넉히 지핀, 동네에서 젤루 인심좋은 집 사랑에 모여 놀다가
살얼음 서걱대는 동치미 국물에 막국수 말아먹고는 부르르 진저리치는 음식이 막국수입니다.
메밀은 중앙아시아 바이칼 호수 주변이 원산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언제쯤 들어왔는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어른들에게서 들은 설화에는,
난리통에 (병자호란인지,임진왜란인지 모르겠는데) 오랑캐들이 민가에서 식량을 약탈하려 하였는데,
집 주인은 보다시피 먹을거라곤 아무 것도 없다 했고...
침략자들이 빈 손으로 돌아간 후 집 주인은 벽을 긁어 끓여 먹었다..
침략에 대비한 농민이 벽의 미장을 메밀가루로 했던 게다...
...그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또 하나, 돌메밀을 먹으면 얼굴이 붓기 때문에 팥쥐어멈이 콩쥐에겐 돌메밀로 만든 음식을 먹였다는 이야기도
옛날얘기 좋아하는 동네 할머니한테 들은 적이 있습니다.
메밀은 한여름, 말복 즈음해서 씨를 뿌립니다.
밭갈기가 너무 덥기 때문에 새벽별 보고 나가서 밭갈기를 시작하여 햇살 퍼지기 전까지 파종을 마쳐야 합니다.
생육기간은 두달에서 두달 반 정도 걸립니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므로 강원도 산골에서 많이 심었습니다.
요즘이 한창 메밀꽃이 흐드러질 때입니다.
가산 이효석의 메밀꽃 필무렵이 아마 이맘때가 아닐까 합니다.
메밀꽃의 흰색 은은함도 좋지만, 흰꽃에 어우러진 붉은 대궁도 보기 좋습니다.
가을에 메밀을 수확할 때는 낫을 갈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만큼 메밀 대궁은 약하고 낫질하기가 쉽지요.
이렇게 농사지은 메밀로 겨울밤 막국수를 말아 먹는 겁니다.
막국수는 동치미 국물에 나박김치여야 제맛입니다.
메밀과 무가 서로 궁합이 맞는 음식이란 말도 들은 듯합니다.
김치도 고춧가루나 젓갈을 많이 쓰지 않아야 막국수의 구수하고 담백한 맛이 살아납니다.
고기나,향이 강한 파, 마늘도 막국수에는 맞지 않는데, 요즘은 어디를 가봐도 막국수에 돼지고기 한 점, 달걀 반개를 얹어 줍니다.
걸쭉하고 뿌연 막국수 삶은 물에 간장 살짝 타서 마시면, 짭쪼름 구수한 맛이 일품입니다.
메밀에 듬뿍 함유된 루틴이라는 물질은 혈압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니까
혈압 높은 분이나, 골프 망치고 열받은 분에게 좋은 음식입니다.
하나 더 .....
메밀껍질은 통풍이 잘되고 땀 흡수가 좋아 베갯속으로 최곱니다.
빳빳이 풀먹인 베갯잇에, 사그락 사그락하는 베갯소리도 좋구요.
요즘은 메밀껍질을 쓴 베개를 보기가 힘들지만....
달빛받은 박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