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그리고 2005년 논산훈련소
1978년 10월 13일 오후.
나는 시외버스를 세시간이나 타고 춘천으로 가서
춘천 공설운동장에 집결하여 춘천역에서 군용열차를 타고
연무대까지 갔습니다.
농사일이 바쁜 터라 배웅은 아무도 안나왔고,바라지도 않았습니다.
배웅없기는 나뿐 아니라 거의 모두가 같은 입장이었습니다.
객차 안에 베치된 범같이 생긴 호송병들은
입영 장정들의 군기를 잡는다고 어지간히 설쳐대었습니다.
기차는 역마다 서고, 모든 일반 열차 다 보내고 가기 때문에
연무역에 도착한 때는 한 밤중이었습니다.
연무역에서 수용연대까지는 열지어서 걸어갔고,
자정 가까이 도착한 입영 장정들은
또다시 얼이 빠지도록 후달긴 후에야 군대생활 첫 잠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2005년 3월 28일.
간밤에 늦게 들어왔음에도 신통하게 늦잠을 안 잔 아들놈과 아침밥을 먹고
논산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느긋해 보이는 아들놈은 뒷자리에 비스듬히 앉아 잠을 청하는 듯했고,
옆자리 아내는 별 말이 없습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마시는 커피가 별 맛이 없습니다.
세 시간여 달려 논산 훈련소 입구에 도착하니
훈련소 부대앞에 즐비한 식당들에서 저마다 호객에 열 올립니다.
훈련소 앞 부터 입소장소 까지는 거의 800여미터 가까이 거리가 되므로
훈련소 앞 식당은 그냥 지나치라는 말을 들은 터라 좀 더 올라가니 입소대대가 보입니다.
그 앞에도 식당은 즐비합니다.
아무데나 들어가서 간단하게 갈비탕 한 그릇씩 시켰는데,
맛.....다시 못먹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한그릇 모두 먹는 아들놈이 대견한데,아내는 거의 못먹습니다.
입소장소로 차를 몰아 들어가니 이미 상당히 많은 청년들과 그 가족들이
연병장 뒷쪽 노천극장(?)에 모여서 흥을 돋구고 있습니다.
군악대가 반주를 하고, 입영 청년들이나 그 가족, 애인들이 노래를 부릅니다.
엄마가 나와 노래하고 아들은 춤추고...
아버지와 아들이 어깨동무하고 노래하고,
애인이 경쾌한 리듬의 노래를 부르고, 관객은 환호하고.
노래를 마친 사람에겐 작은 기념품도 줍니다.
입소식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부대에서 배려한 자리입니다.
시간이 되어 입영장정과 그 가족들이 연병장으로 집합합니다.
우선은 장정과 가족이 모두 스탠드에 앉습니다.
장정들 집합전에 휴대금지 물건을 부모들에 주라는 방송이 나오니까
이제 입영을 실감한 엄마들이 훌쩍이기 시작합니다.
청년들은 애써 밝은 얼굴을 하고, 아버지들은 덤덤한척들 합니다.
이어 장정들 집합명령이 내려지고,엄마들은 다시 한번 훌쩍입니다.
느릿느릿 집합한 청년들이, 몇번의 예행연습을 거치니 경례자세와 구호가
제법 군인 모습이 나옵니다.
입소 의식이 끝나고 장정들과 부모들이 모두 진짜사나이를 합창하는데,
흘끗보니 아내는 눈물이 글썽입니다.
진짜사나이....참으로 오랫만에 불러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장정들이 부모들에게 돌려줄 물건이 있으면 드리라고 하니
이미 모든 물건을 주고갔던 청년들이 우루루 스탠드로 뛰어옵니다.
3할정도의 청년들은 그냥 그자리에 서 있는데
우리 아들놈도 그 3할에 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엄마 보라는 배려인 줄 모르고 저 멋대가리없는 녀석이
저기서 꼼짝않는다며, 아내는 영 서운해합니다.
모든 행사가 끝나고 청년들은 대오를 갖추어 막사를 향해 사라집니다.
그 뒷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볼 요량으로 부모들은 스탠드를 떠나지않습니다만.
그 많은 청년들 중에 자기 자식모습을 찾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돌아오는 길에,27년 전 우리가 입대할 땐 어떠어떠했다고
과장 섞어 얘기를 하는데, 아내는 전혀 재미없는 눈치입니다.
뭐. 그래도 싱거운 얘기라도 해야 돌아오는 길이 지루하지 않겠기에
요즘 군대는 군대도 아니다 어쩌고 하다보니 아내는 잠이든 모양입니다.
........27년전, 그때가 자꾸 생각납니다.
~박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