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이야기

이 동전 형거였어?

봄봄9 2010. 9. 21. 10:19


가을의 햇살이 눈부시다.
가끔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얼굴을 간지른다.
가을 밭일은 딸년 시키고, 봄 밭일은 며늘년 시킨댔지?
봄 볕에는 얼굴이 까맣게 타도, 가을 볕에는 잘 타지 않아서라던가.

흰구름 두어 조각 떠있는 파란 하늘, 오늘같은 날은 무엇을 하던 좋은날이다.
아침에 작은 놈이 창밖을 보며
"우와! 놀기 좋은 날이다!"
환호했다.
녀석, 언제 저보고 일 하랬냐?

강촌 골프장, 약간 낯선 코스다.
몇 번 와보긴 했지만 홈 코스만 할까.
오늘은 왕초보 후배 머리 올려주는 날, 우리 부부와 고수 한 분이 함께 한다.
머리 올려주는 날은 불안하다.
저 녀석 얼마나 헤맬까.
뒷 팀에 피해는 주지 않을까.
저 녀석이 내 플레이는 얼마나 갉아 먹을까?
....내 머리 올려준 그 사람도 이렇게 불안했겠지.

힐코스 1번 홀 파4.

오르막, 앞에 보이는 벙커만 피하면 2온이 쉬운 홀이다.
벙커를 의식한 드라이버 샷은 내 공을 오른 쪽 산 비탈로 날린다.
세컨 샷이 어렵겠다는 생각보다, 새 공인데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가까스로 3온해서 주머니를 뒤지는데 마커가 없다.
아쉬운대로 500원짜리 동전으로 마크하고 보니 너무 커보인다.
할수 없지, 한참 먼 홀까지 거리를 재고 오니, 이런!, 동전이 없다.
아무래도 왕초보 저놈이 수상하다.
"여기 동전 못봤냐?"
"예? 아! 누가 거금 500원씩이나 흘렸길래 수입 잡았다 했지요.
이 동전, 형 꺼였어요?"
으이그.... 10원짜리였으면 안 집었을라나?

5번홀 파4.

팅 그라운드 앞에 계곡이 있고, 길이도 긴 핸대캡 1번 홀,
티샷한 공이 하늘 높이 솟더니 150미터 쯤 나갔다.
왕초보에게 뭔가 보여주려는 맘에 힘만 잔뜩 들어갔나보다.
세컨샷은 맘을 다부지게 먹고 스픈을 든다.
잘 맞은 듯한 공은, 어, 어, 어 하는 사이 벙커로 빨려들어간다.
스픈 샷을 후회하며 한 벙커 샷은 공을 겨우 한 뼘 옮길 뿐이다.
어라, 요것 봐라? 하는 맘에 다시 휘두른 샷은 또 한번 모래만 파내고 만다.
벙커샷 세번에 결국 트리플 보기를 기록했다.
홀을 이동하며 원망스런 얼굴로 지난 홀을 돌아보는 내게 고수가 충고한다.
"일찍 포기하는 법을 배워야 스코어가 줄어.
미스 샷은 미스 샷으로 인정하라구.
샷 한번 미스 한걸 인정하면 한타 까먹지만, 그걸 포기 않고 바로 만회하려하면
두타,세타 늘어나는 건 잠깐이야."
아, 나는 언제나 맘 비우고 포기하는 법을 배우려나.

7번홀 파5

팅 그라운드에 서면 발아래 소양강 물줄기가 보이는 시원한 홀이다.
고수들은 투온도 곧잘 노리는 홀이지만, 내게는 여전히 어렵다.
당연하지만, 왕초보는 여전히 헤맨다.
나는 더블 보기로 홀 아웃을 한다.
저 녀석 신경 쓰다가 내 게임 망치네....속으로 핑계를 만든다.
초보에게 묻는다,
"몇 타냐?"
"글쎄... 다불인 것 같은데요?"
뭣이? 내가 겨우 다블 했는데 네가! 하는 맘에,
" 야, 너 티샷 헤저드 1벌타 먹었구, 임마, 오케이 한것두 한타로 세야지!
그러면....에바구만!"
고수가 씩 웃으며 한 마디 한다.
"자기 골프를 쳐야지 남 골프 치면 망가져.
동반자가 어떻게 치는가에 너무 신경쓰면, 결국 동반자 골프 쳐주는 꼴이 된단 말이야.
자기 골프에만 집중해야 좋은 결과가 나온다구."

레이크 1번 홀 파4

전반 9홀 성적표를 들여다보니, 형편 없다.
이젠 보기플레이는 해야 할 때 않됐나..탄식하는데 아내가 조언한다.
"홈으로 생각하고 편하게 치세요."
맞다. 홈으로 생각하자. 여긴 춘천c.c.다.
홈으로 생각하고, 아까 고수가 뭐랬더라... 그래, 포기할건 일찍 포기하자.
가볍게 파 하나 건진다.
이게 대체 몇 홀만에 건진 파냐?

4번 홀 파 4

"앗, 따거!"
세컨샷 어드레스하는데 산 비탈 쪽 러프에 있던 왕초보가 비명을 지른다.
"어휴, 벌에 쏘였어요!"
아니, 웬 벌?
" 공을 바로 놓으려고 마크하구요, 공을 집는데..벌이 있었네요."
푸훗!
나머지 셋이 동시에 웃음을 터뜨린다.
"마크하고 공을 집어? 얌마, 그건 그린에서나 허용되는 거야!"
녀석의 얼굴이 벌에 쏘인 손가락만큼 붉어진다.
"어디 보자... 오른 손을 쏘였으니 오른손에 힘 못 쓰겠군, 잘됐다."

9번 홀 파4

마지막 펏이 서너 뼘 모자라 파를 못한다.
고수가 컨시드 주면서 조언한다.
"수백년 골프 역사상 길게 친 펏이 들어간 예는 수 없이 많아도,
모자르게 친 펏이 들어간 예는 단 한 번도 없어. 기브!"
쩝, 입맛 다시며 퍼터로 공을 들어 올리는데,
퍼팅을 마친 왕초보, 공을 들어 퍼터위에 올려 놓더니 조심스레 들어 올린다.
"뭐하는 거니?"
"예? .. 이렇게 하는 거 아니우?"
멋적게 웃는 녀석의 어깨 너머로 가을 하늘이 유리 구슬마냥 투명하다.



......달빛받은 박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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