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이야기

클럽하우스 목욕탕에서

봄봄9 2010. 9. 21. 10:20


비를 흠뻑 맞으며 진행한 라운드 후, 따뜻한 물 속에 몸을 담그고 지난 18홀을 반추한다.
늘 그렇듯이 게임을 뒤돌아보면 매 홀, 매 샷이 아쉽다.

둘러보니, 탕 속의 사람들 표정이 10인 10색이다.
지긋이 눈을 감고 상념에 잠긴사람, 쉴 새 없이 옆사람에게 오늘의 경기에 관해 설명하는 사람,

건성으로 응,응하는 옆사람,그 팀과 전혀 관계없어 보임에도 그 대화에 흥미있는 표정으로 귀 기울이는 사람.....

........110타 전후를 넘나들 무렵,첫 티샷의 설레임이 탕 속에까지 이어질 때,
목욕탕에서 보이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고수로 보였다.
알몸으로 서성이는 모두가 구릿빛으로 그을려져 보이고, 그들의 대화 내용도 버디가 몇개냐, 오늘타수가 칠십 몇타냐 하는 것만 귀에 들어왔다.
우리는 기죽지 않으려고 일행들끼리 귓속말로 모의했다.
....우리 모두 오늘의 스코에에서 빼기 30이다!
너는 79타, 나는 85타..기죽지 않으려고 열심히 떠들고 있는데,
옆에서 목만 내놓고 밖을 보며 아무 말 않던 A, 느닷없이 큰 소리로 탄식했다.
"B야!..허이구 ! 오늘도 결국 100을 못깨고 마는구나!"
깜짝 놀란 B, 얼른 주위를 둘러보고는, A의 옆구리를 쥐어박으며 소곤거린다.
"이봐! 빼기 30이라니까?"
그러나 100을 못 깬 아쉬움에 젖은 A, 계속 큰 소리로 탄식한다.
"허이구..마지막 롱 홀, 양파만 안했어도 99타였는데.."
황당해진 우리는 후다닥 탕을 빠져나왔고,
맞은편에 앉아있던 중년 남자 싱긋이 웃었다.
도망치듯 탈의실로 나와 수건으로 몸을 닦던 B, 다시 작은 목소리로 다짐을 했다.
"이거봐A! 마이너스 30이야, 알았지?"
헛기침 한번 하고난 B , 좀 큰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건넨다.
"...박꽃! 마지막에 더블만 안했어도 자넨 오늘 싱글 되는건데..."
" 맞아, 좀 아쉽지만, 뭐 할 수있나? 담에 도전하지.."
나도 장단을 맞추고 있는데,
저 쪽에서 머리를 빗던 A,또다시 큰소리로 탄식했었지.
"허이구,참, 마지막 롱홀에서 양파를 하다니!"
우리는 또다시 후다닥 도망나왔다..........


...옛날 생각에 혼자 웃음 짓다가, 옆에 앉은 싱글 오사장에게 묻는다.
"오른쪽 발이 높을 경우 어떻게 샷해야돼?
자꾸 뒷땅이 나는데.."
언제라도 성심껏 대답해주는 오사장,
"응, 그거!"
하더니 벌떡 일어나 맨손으로 샷 폼을 보여준다.
따끈한 물속에 잠겼던 터라 한 껏 늘어진 신체의 일부가 스윙에따라 덜렁인다.
무어라 설명을 하는데,말은 귀에 안들어오고 덜렁대는 모습만 눈에 꽉차서
웃음만 키킥 터진다.

갑자기 냉탕에서 텀벙이는 소리가 요란하다.
돌아보니 낼 모레 환갑이신 K 선생이 물장구를치다가 눈이 마주치니 장난끼 가득한 얼굴로 씨익 웃는다.
물속에서 어린애로 돌아가고 싶은 맘이야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저 쪽 샤워기 쪽에서는 일행들끼리 짜증섞인 목소리들이 오간다.
저 사람들, 우리 앞 팀으로 경기하면서 그린에서 지폐 주고받으면서 다투느라고
그린도 늦게 비워주더니 예까지 와서도 아옹다옹이구나.

클럽하우스 목욕탕은 필드의 연장이라서 팀 별로 필드에서의 모습이 그대로 이어진다.

대형 유리 밖으로 보이는 필드에 떨어지는 빗줄기가 굵어진다.....


-----달빛받은 박꽃----

'골프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본 시고쿠 마쓰야마 오쿠도고 골프여행기  (0) 2010.09.21
스코어 카드 읽기  (0) 2010.09.21
이 동전 형거였어?  (0) 2010.09.21
라면국물 생각에  (0) 2010.09.21
연못에는 오리들이 乙,乙,乙.....  (0) 2010.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