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이름, 그리고 대화명

봄봄9 2010. 9. 21. 12:16


조선시대 사대부 집안 남자들은 일생동안 보통 4가지의 이름을 썼답니다.

먼저, 태어나서 어릴 때 부르는 아명(兒名)이 있습니다.
아명은 천하게 붙이는게 풍습이었습니다.
그래야 무병 장수한다고 믿었던 겁니다.
아니면 이름이 너무 거창하거나 아름다우면 일찍 죽는다고 믿었거나...
그래서 황희 정승의 아명은 "도야지"였고, 고종황제의 아명은 "개똥이" 였습니다.

아이가 자라서 남자 스무살이 되면 상투를 틀어 관을 쓰는 관례(冠禮)를 올리게되는데,

이때에 집안의 항렬을 따라 본 이름을 짓는데 이를 관명(冠名)이라 합니다. 비로소 제 이름을 얻는 것이지요.
남자가 관례라는 일종의 성인식을 치루는데,

 여자는 열다섯 살에 비녀를 꽂고 쪽을 찌는 계례라는 성인식을 치루었답니다.
여자는 관명을 짓지 않았던 걸로 아는데, 제가 바로 알고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남자가 혼인을 하면 진정한 어른이 되기에 윗사람 외에는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가 없읍니다.
그래서 붙이는 이름이 자(字)라고 합니다.
사육신 중에 이 개 라는 어른이 있는데,

 이 어른의 후예들은 개를 개라고 부르지않고 "마당 너구리"라고 부른다고 들었습니다.
개를 개라고 불러 어른의 함자를 함부로 입에 올릴수 없다는 이야깁니다.
요즘도 어른의 이름을 남에게 이야기할 때는 무슨字,무슨字입니다, 하는 예절은 남아있구요.
(그런데, 자기 이름을 말할 때도 무슨자,무슨자 입니다 하는 걸 들으면 그야말로 웃깁니다.)
여자는,시집을 가면 고향을 따서 택호로 불리었지요(춘천댁,평양댁..)
(여자의 고향인지 남편의 고향인지 지금 까먹었네요^^)

아명,관명,자 는 어른이 지어주는 이름이고 스스로 붙일 수 있는 이름이 호(號)입니다.
호는 자기가 추구하는 세계를 표현하기도하고,좋아하는 글귀에서 빌려쓰기도하고, 고향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스스로 짓기도하고 스승이 내려주기도 합니다.
요즈음은 서예를 배우거나 한국화를 배우는 사람들이 호를 쓰고, 그외에는 거의 사라진 문화입니다.
운치있는 문화가 사라져서 아쉽습니다.
정치인들도 와이에스니, 디제이니 하지말고 아호로 불렀으면 좀더 점잖고 아름다운 정치가 될듯도 한데....(와이에스나 디제이도 아호는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런데,
사라진 호가 인터넷 세상에서 아이디라는 모습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이터넷의 아이디를 보면 각자의 생각과 개성이 보입니다.
멋도 부리고, 자기의 생각을 함축해 표현한 이름도 보입니다.

제가 인터넷 바둑 사이트에서 쓰는 이름을 소개합니다.

닭갈비

삼국지에 조조가 어느 전투에서 전투를 계속할수도 끝낼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러
군호를 묻는 부하에게 무심코 말한 것이 "계륵"이랍니다.
먹자니 먹을것은 없고,버리자니 아까운 상황을 말합니다.
한판의 바둑에 수없이 나오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이디를 "닭갈비"로 정했습니다.

칡꽃등꽃

바둑은(세상살이 모든게) 갈등의 연속입니다.
이렇게 둘까,저렇게 둘까 매 수 갈등하는 것이 바둑입니다.
(골프할 때도 갈등은 많습니다. 한클럽 더잡아? 말아....)
그런데 갈등을 그냥 칡넝쿨,등넝쿨하기보다 칡꽃등꽃하니까 한결 부드럽지요.
칡꽃은 사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참 예쁜 꽃입니다.(물론 등꽃도)

옥씨기 수염

옥씨기는 옥수수의 강원도 사투립니다.
玉食이... 옥같이 귀한 음식이다, 하는 뜻이기도 하답니다.
옥수수는 대궁 정수리에 서너가닥 먼지 털이개 모양으로 삐죽 솟는 꽃이 있는데
이를 "개꼬리"라고 합니다.
옥수수의 숫꽃이지요.
옥수수는 대궁 옆구리에 달리는데, 옥수수에 노리개 꽃술같이 생긴 암꽃이 있습니다. 사람의 수염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빨간색도 있고 노란색,흰색도 있는데 이것이 옥수수 수염입니다.
옥수수 열매 색깔은 수염 색깔과 같습니다.
감자와 더불어 강원도의 상징적이 곡식입니다.

어처구니

어처구니란,상상밖의 엄청나게 큰 사람이나 물건입니다.
상상속의 사람이므로 어처구니는 원래 없는 겁니다.
어려서 산길을 걷다보면 누군가 엄청나게 큰 사람이 뒤쫓아오는 것 같아,휙 돌아보면 아무도 없던 기억이 있습니다.
분명 누가 따라왔는데, 아무도 없다.....어처구니없지요.
아주 황당한 일을 당했을 때도 어처구니 없다고 합니다.
저는 바둑두다가 어처구니없는 수를 잘 둡니다.
골프할 때도 어처구니없는 샷을 자주합니다만.

개살구

보기엔 좋으나 실속은 없는게 "빛좋은 개살구" 입니다.
개살구는 야생 살구입니다.
봄에 온산을 화사하게 물들이는 꽃이 개살구 꽃입니다.
오랜 여행끝에 고향으로 돌아가 마을 어귀 산 모롱이마다 핀 살구꽃을보면 괜스리 콧잔등이 찡했습니다.
개살구는 맛이 매우 시어서 덥석 물었다가는 입안 그득 침이 고입니다.
먹기 힘들다는 이야깁니다.
바둑 사이트에서 "개살구"를 잘못 물었다가는 너무 시어서 못 먹고 뱉습니다.
(제가 이길 때도 있다는 겁니다)

달빛받은 박꽃

제가 골스에서 쓰는 이름입니다.
박꽃은 여름 저녁에 피어서 아침에 시드는 꽃입니다.
아무리 봐도,아름답거나 이쁜 꽃은 아닙니다.
장미처럼 진한향기도,찔레꽃처럼 은은한 향기도 없읍니다.
밤에 피는 꽃이기에 달빛을 받습니다.
예쁘지는 않아도 소박한 꽃이 달빛을 받고 피어있는 모습은 청초한 아름다움입니다.
박꽃처럼 소박하고 꾸밈없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달빛이 비추면 더 좋구요.....
저는 이름값을 하고있는지 두렵습니다.



------ 달빛받은 박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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