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밥 한 그릇의 추억

봄봄9 2010. 9. 21. 10:26


객지에서 학교에 다니는 아들놈이 어쩌다 한 번 집에 와 잘 때면,

모처럼 한 식구 모두 모여 아침밥을 먹고싶어서,

 궁시렁대는 놈 억지로 깨워 밥상앞에 앉힙니다.
그러나 잠이 덜깬 게슴츠레한 눈으로 젓가락 깨작대는 모습에 그만 울화가 치밉니다.
밥을 함께 먹는것이 식구요, 한 솥 밥을 먹는다는 게 곧 가족이건만,
또한 밥상머리 대화를 통한 교육이 가정교육의 시작이련만,
각자 생활이 달라지고 출근시간과 등교시간이 같지 않으니 밥 먹는 시간도 각각이 되고 말아,

한 식구란 말이 무색해진 세태가 싫습니다.

사십여년 전 우리집은 열 한 식구였습니다.
찬도 별로 없는 밥상 앞에 열 한 명이 둘러앉으면 형제들은 어느 밥 그릇이 실속있나,
치열한 눈치 싸움을 벌였습니다.
주발에 담긴 밥이 겉 보기엔 수북한 밥이지만 숟가락 꽂으면 그 속은 주먹만한 감자뿐 이란걸 모두 알고 있지만,

그래도 밥 속의 감자가 어느 밥그릇에 덜 들었을까.
눈치껏 견주어 보고 자리도 바꾸어 앉으려고 밀고 당겼습니다.
어머니가 감자를 균등하게 먼저 밥그릇 마다에 넣고나서

 밥을 그위에 또한 똑같이 담는다는 사실은 한참 후에야 알았습니다.
그 시절 밥 그릇 앞에 놓고 깨작댄다는 건 꿈도 못 꾸었습니다.

그 무렵 어쩌다 귀한 손님이 할아버지를 찾아오셨습니다.
점심 때가 다가와도 돌아갈 생각을 않는 손님에 어머니는 한숨이 나오고,
손님에게 진지나 드시고 가시라는 할아버지의 권유가 있고
뭐, 그냥 간다는 손님의 사양 끝에 할아버지의 어흠하는 헛 기침이 나오면,
어머니는 아꼈던 쌀 한 줌으로 냄비밥을 하십니다.
이럴 경우 손님은 반쯤 드시다가 수저를 놓는게 보통이련만
그러면 남은 밥은 아이들 차지련만(그것도 쌀밥으로!)
이 손님, 밥에다 물을 부었습니다.
남기지 않고 다 먹겠다는 표시였습니다.
사랑방을 흘금대던 동생이 그만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으앙! 물에 말았네!"

봄에 모심을 때면 모심는 집 논가에서 모심는 어른 뿐 아니라

 따라온 아이들도 밥을 먹었습니다.
모 심는 날 먹는 밥을 못밥이라고 불렀습니다.
못밥은 평소와 달리 쌀밥으로 푸짐하게 차렸고 반찬도 많았습니다.
그 때 는 모두 가난했지만 그중 더 가난한 집 아낙이 아이들 데리고 와서 못밥을 먹이는데,

 먹을만큼 먹은 아이가 숟가락을 놓으려 하면
눈 흘기고 옆구리 쥐어 박으며 더 먹이려는 모습은 지금도 선합니다.

1978년 가을 군대에 가게 되었는데,
수용연대에서 군대밥을 받아놓고 도저히 못 먹겠다며 그냥 버리는 사람을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밥을 버려?
그사람도 사흘이 못되어 잘 먹기 시작였습니다.

훈련소에서 사역을 나갔는데 사람 좋아보이는 조교가 인솔하였습니다.
점심때가 되어 라면을 배식을 하였는데,
좀 남았나 봅니다.
"더 먹을 사람 이리 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우르르 훈련병들이 뛰어갔습니다.
그런데, 내옆에 앉아 있던 동료 하나가 그 모습을 보다가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꿀,꿀, 꿀!"
사람 좋아 보이던 조교가 사나운 싸움닭으로 변한 건 순간이었습니다.
그 날 우리는 밥을 먹는다는 신성한 행위를 모독한 동기를 둔 탓에
땀 깨나 흘렸습니다.

며칠 전 십여년 연상 어른들과 저녁을 먹으며 이런 저런 밥에 대하여 이야기하다가
그 분이 문득 물었습니다.
"그렇게 중요한 게 밥인데, 왜 의식주지? 식의주가 아니고..."
저는 별 생각 없이 냉큼
"아들 손자 며느리 다 모여서 먹는데,
벌거벗고 먹을 수는 없잖습니까?"
했는데, 싱거운 농담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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