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비 닮아서 술 좋아하는 아들에게.
이제 네 나이 스물, 새내기 대학생이 되어
고등학생 시절과 달리 누구 눈치 안보고 술을 마실 수 있게 되었구나.
그러나 누구 눈치 안보고 술 마신다고 생각하지 말고 ,
술 마시는 것도 룰이 있음을 알라는 마음에서 잔소리를 하게 되는구나.
술, 참으로 좋은 것이다.
사람 사는 사회를 부드럽게 하고, 개인의 생각의 깊이를 더 할 수 있게 하고....
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 술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술은 잘 마셔야 좋은 것이지 잘못 마시면 그 폐해가 자못 심각한 것이니
처음 시작할 때 다음 몇가지를 유념하여 좋은 술 습관을 들이길 바란다.
시간.
술은 酒이니 酉시 이후에나 마시기 시작하도록 하여라.
유시 이후에 술을 마시란 말은 대략 오후 여섯시 반이나 일곱시 이후가 돼야만 술을 마시란 말로,
술은 밤에나 마실 일이지 대낮부터 술에 취한 모습을 남에게 보이지 말란 뜻이겠지.
낮에는 각자 자기 일에 충실해야 할 시간이기에,
낮 시간에 얼굴이 벌개서 다니지 않도록 하길 바란다,
시작.
술은 기쁠 때나 슬플 때,즐겁거나 괴로울 때 모두 벗이 돼 주는 음식이긴 하지만.
되도록이면 기분 좋게 마시는 것이 좋다.
기분이 매우 나쁘거나 벅찬 고민 속에서 술을 마시면.
폭음으로 이어지게되고, 폭음은 감정의 절제를 깨버리게되며,
그 결과는 문제 해결에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면서 몰골만 추하게 되는 법이다.
술이 근심 걱정을 근본으로부터 해결해 주지 않음을 명심 하여라.
그런 일이 있다면 어느 정도 마음을 진정시킨 후에 술을 시작하는 게 좋다.
주량.
젊은 나이엔 흔히, 간밤에 소주를 몇 병 마셨느니, 맥주를 몇 천 씨시를 마셨느니,
하며 자랑하게 되며 마치 술 많이 마신것이 무슨 대단한 성취인 양 말하게 된다.
그러나 주량의 많음은 결코 자랑할 일이 아니고
주량이 적다고 비웃음의 대상이 돼서도 안된다.
술자리를 함께한 벗과 주량을 견주려 하지 말고
또한 술을 잘 못 마시는 사람에게 술을 강권하지도 말아라.
그냥 분위기에 맞추되 절제하여 마셔라.
술은 酒이니 닭이 물 마시듯 마시는 것이지
소가 물 마시듯, 마른 논에 물 대듯 소주를 사발에 부어 마시는 것이 아니다.
태도.
주도니 법도니 예의니하며 복잡하게 생각 할 것 없다.
어른 앞에선 공손한 태도를 유지하고
후배에겐 너그럽게 대하며
동료라면 유쾌하고 정겨운 분위기를 유지하면 된다.
식당처럼 여러 사람이 이용하는 곳에선 이웃 자리에 방해되지 않도록
목소리를 조금 낮추고,
종업원에게 오만하게 굴지 않으면 되고
야외나 캠퍼스 잔디 위에 마련된 자리라면
다 마시고 나서 흔적을 남기지 않으면 족하다.
대화.
술을 마시면 말이 많아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므로 걱정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혼자만 너무 많은 말을 하려하지 말아라.
남의 말에도 귀 기울여 주는 것이 술자리 분위기를 좋게하는 방법이다.
오로지 자기 주장만 하다보면 술자리가 어색해진다.
남의 말에, 설령 그 말이 터무니 없는 말이라 할지라도
지나치게 딴지 걸지 말고 깐죽거리는 태도를 보이지 마라.
함께 술 마시다가 싸움이 벌어진다면,
그 이유는 대개 남의 말꼬리 잡고 깐죽대다 생기는 일이란다.
술자리에서의 화제는 자기만 아는 전공 분야 보다는 문학.철학.역사.사회.취미 등
내용이 깊지는 않더라도 폭 넓게 다루는 게 좋다.
그럴라면 평소에 폭 넓은 독서가 필요하겠지.
술자리에서의 대화는 딱딱한 것 보다는 적당한 유머가 섞이는게 좋다.
대화는 모든 주제가 다 좋지만, 주위의 특정인을 지적해서 욕하지 마라.
술자리에서 누구를 욕하다보면 아무 근거없는 비난에 흐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술값.
술은 그 값을 누가 내던간에 자기 분수에 맞게 마셔야한다.
비싼 술 좋은 안주라야 좋은 술자리가 되는게 아니다.
남이 술값을 치른다 하더라도 그 술값이 너의 분수에 넘는 자리면 피하는 게 옳다.
다시 말하면 네가 감당할 만큼의 술값 한도 내에서 마셔라.
끝낼 때.
술자리를 어느 정도에서 끝 낼지를 안다는 것은 어렵지만 매우 중요하다..
젊은 날에 동창이 밝아올 때까지 마시며 토론하는것도 나쁠 것은 없지만
끝낼 때 끝낼 줄 아는 절제도 배워야한다.
만취해보는것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으나
되도록이면 주량의 8할 정도만 마시고 끝내는 것이 좋다.
(자신의 주량을 안다는 것이 매우 어렵다만.)
다음 날.
술 마신 다음날, 간 밤에 술 마신 티를 낸다면
술 마실 자격이 없다.
술 마신 것은 지난 밤 술 마신 것으로 끝이지
다음 날까지 간 밤 술마신 일을 티 내지 마라.
술은 간 밤에 마신 것이고, 오늘은 오늘일 뿐이다.
행여 간밤 술자리에서 실수가 있었다면 망설이지 말고 사과하여라.
사과하되 "술 김에~" 하고 토 달지 마라.
술과 관계 없이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해야한다.
술 취한 행동은 좀 너그럽게 봐 주리란 생각은 처음부터 갖지 말길 바란다.
다만, 남이 술 마시고 흐트러진 일을 네가 추궁하진 말아라.
남은 추궁하지 말되, 너는 엄격히 절제하라는 말이다.
젊은 날 벗과 술과 사색이 함께하면 얼마나 좋은가!
네 젊음이 좋은 줄은 훗날에야 깨닫겠지만...
아들이 술꾼이 되려면 좋은 술꾼이 되길 바라는 애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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