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쯤, 어느 여름날.
학원 공부도,컴퓨터 오락도, 텔리비젼도 없던 그 시절
우리들의 여름방학은 하루종일 놀고 또 노는 것외엔 아무런 특별한 일이 없었습니다.
농삿일이 바쁜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다그칠 여유도 없이 새벽부터 논으로 밭으로 일하러 나갔고,
집에는 아이들과 누렁이나 검정개 밖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삼복의 이글대는 해가 중천에 걸리면 아이들은 하나씩 둘씩 동네 밖 개울로 모여듭니다.
봄 내내 말랐던 개울은 장마가 지나간 후라서 물이 제법 많이 흐릅니다.
이 무렵이면 동네 어른들은 개울 한 군데 적당한 곳을 골라 호박만큼씩한 돌로 물을 막아놓습니다.
동네 어른들이 아이들을 위해 마련해준 수영장입니다.
깊은 곳은 아이들 가슴께까지이고 얕은곳은 무릎정도의 깊이가 됩니다.
개울로 모인 아이들은 평평한 바윗돌에 헐렁한 반바지와 <난냉구>를 벗어 얌전히 개어놓고,
검정고무신은 가지런히 벗어 놓고 벌거숭이 알몸으로 물에 뛰어듭니다.
<난냉구>...티셔츠를 그때는 그렇게 불렀습니다.
좀 유식한척 하는 사람은 <런닝>이라고도 했습니다.
보통은 가로 줄무늬가 있는 그 옷이 요즘이야 속옷 취급받지만,
그 때는 당당한 평상복이거나 외출복이었습니다.
벌거숭이 아이들이 물속에서 머리만 내놓고 엎드려 있는 모습은 샘물에 개구리들 떠 있는 모습 그대롭니다.
수영의 기본도 모르는 아이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헤엄은 물장구도 요란한 개헤엄입니다.
조금 큰 아이들이 멋 부리며 헤엄치는것을 우리는 장마헤엄이라고 불렀습니다.
요즘의 자유형에 해당되는, 그러나 전혀 다른 모습의 영법입니다.
별로 힘 안들이고 누워서 흐느적대는 헤엄도 있는데,끔찍하게도 송장헤엄이라고 불렀습니다.
여러가지 헤엄치기가 재미 없어지면 서너명씩 한데 엉켜 물싸움을 벌입니다.
손으로 물을 상대에게 끼얹는 놀이인데,고무신이 동원되기도 합니다.
물싸움하다가 물이 벗어놓은 옷에 튀고 젖은 옷은 다시 모래에 범벅이 됩니다.
모래 범벅된 옷을 그대로 둘 수 없어서 빨아 널을 생각을 합니다.
엄마가 하던 모양을 흉내내어 물에 옷을 헹구고,주물르기까진 했는데 빨래방망이가 없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다가,좀 매끈한 돌멩이를 주워서 콩,콩,콩 두드립니다.
그리곤 넓은 바윗돌위에 널어놓고 또다시 물속을 텀벙댑니다.
물가 한쪽에는 누구네 아버지가 갖다 놓았는지 <고야>가 한 바구니 물에 잠겨있습니다.
요즘이야 모두 <자두>라고 부르지만 그때 우리는 고야라고 했는데,오얏의 지방 말일겁니다.
물속에서 놀면 배가 쉬 꺼집니다.
놀다가 출출하면 한알씩 먹는 고야 맛은 달고도 새콤해서 얼굴을 찡그립니다.
온몸이 까맣게 타고 눈알만 반들거리도록 놀다가 물놀이도 시들해지고,
무엇보다 해가 설핏해져서 물속이 추워지면 슬금 슬금 바위에 널어놓은 옷들을 챙겨 입습니다.
그런데, 어라라! 큰일났습니다.
엄마가 새로 사준 지 얼마 안되는 <난냉구>가 구멍이 뽕,뽕,뽕 뚫려있습니다.
걱정이 태산이지만 아직 해가 남아있어서 더 놀아야합니다.
개미귀신을 찾아 개울 모래밭을 뒤집니다.
개미귀신은 모래밭에 깔때기 모양의 모래 웅덩이를 파놓고 지나가는 개미가 빠질 때를 기다립니다.
그 웅덩이를 개미지옥이라고 하는데,개미가 여기에 빠지면 나갈 수가 없습니다.
모래에 미끌어져서 자꾸 안으로 안으로 빠지게 되고 끝내 개미귀신에게 먹힙니다.
손바닥위에 모래를 조금놓고 이놈을 그 위에 놓으면 개미지옥을 만들려고 손바닥으로 파고 듭니다.
그러면 손바닥이 간질간질합니다.
친구와 누가 더 큰 개미귀신을 잡았는지 대 보기도 합니다.
개미귀신 가지고 놀기도 심심해지면,들로 나가 방아깨비를 잡아 방아찧기를 합니다.
방아깨비를 잡아 뒷다리를 붙잡고 있으면 이놈이 마치 디딜방아 찧듯이 몸을 껍죽거립니다.
도망가려고 다리짓을하는데 다리를 잡혀서 그런 몸짓이 되는겁니다.
잠자리를 잡아 시집 보내는 아이도 있습니다.
잠자리 몸통 끝부분을 떼어내고 가느다란 풀 대궁을 꽂아 날려보내는 겁니다.
...지금이야 잔인하다고 하지만, 그 땐,그것이 그냥 놀이엿습니다.
서산 그림자가 길어지면 아이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갑니다.
동네 어귀에 들어서면 집 앞 도랑가에 커다란 항아리가 있습니다.
항아리엔 썩은 감자가 부글댑니다.
상처난 감자는 이렇게 항아리에 담아 삭혀서 녹말을 내서 떡을 해 먹습니다.
그렇게 만든 감자떡은 까맣게 반들거립니다.
감자떡은 따끈할 때 얼른 먹어야지,식으면 뻣뻣하기가 놀부 마누랍니다.
감자떡이야 맛있어도 당장 감자 썩는 냄새는 싫습니다.
코를 싸쥐고 뛰는데,항아리 주인 아줌마가 보고 웃습니다.
"이 녀석아 감자떡은 잘도 먹으면서!"
집 마당 한 구석에는 모깃불이 연기를 피워올리고 마루엔 저녁밥상이 차려져있습니다.
찐 옥수수 한 바구니,그 옆에 감자 한 남박...밥은 쌀이 약간 섞인 보리밥입니다.
저 밥그릇 ..위에는 밥이지만 속에는 주먹만한 감자 두 알 들어있다는 걸 밥 숟갈 들기 전 부터 압니다.
전깃불 없는 산골 마을은 밤이 일찍 옵니다.
마당 한 쪽에 놓인 엉성한 평상 위에 누우면,하늘엔 미리내가 낮에 놀던 개울처럼 흐릅니다.
어른들은 마당에 깔아 논 멍석에 모여앉아 두런두런 얘기를하고...하루 종일 놀기에 고단한 나는 스르르 눈꺼풀이 무거워집니다.
가물가물 잠결에 나를 안아 방에다 조심스레 누이시는 아버지를 느낍니다.
------- 달빛받은 박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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