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과일은 철이 없습니다.
한겨울에도 여름 과일을 맛 볼 수 있고, 봄에도 가을 과일을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철부지 과일은 제맛이 나지 않습니다.
모든 과일은 제 철에 제 땅에서 나온 것이 맛있습니다.
그럼에도 제게는 제철 아니 과일이 맛있었던 것이 딱 하나 있었습니다.
개똥참외가 그것입니다.
참외밭 수확이 다 끝나고 밭을 갈아엎어 배추나 무를 심을 무렵에 맛 볼 수 있는 것이 개똥참외입니다.
제철이 한참 지난 것입니다.
여름, 참외가 한창 흔할 때, 참외 먹은 아이들이 개울에서 멱 감다가,
아니면 참외 먹은 어른이 시골길을 가다가, 갑자기 아랫배가 쌀쌀해지거나 묵직해 지면,
주위를 한번 휘 둘러보고 가까운 밭으로 들어갑니다.
콩밭도 좋고 옥수수밭도 좋습니다.
앉았을 때 얼추 아랫도리만 가려지면 됩니다.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마침 지나가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지나가던 사람, 어흠! 헛기침 한번 하고 지나갑니다.
신경쓰지 말고 편히 일보시란 뜻입니다.
일보던 사람도 어흠! 헛기침 한번하고는 고개를 푹 숙입니다.
신경쓰지마시고 얼른 지나가시란 뜻입니다.
후딱 일을 마친 사람,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하던 멱 계속 감거나 가던 길
계속 갑니다.
얼마 후 그 밭에 김매던 농부가 밭고랑에 돋아나는 참외 싹을 봅니다.
농부는 참외가 잘 자라도록 정성들여 가꿉니다.
그러나 남의 눈에 안띄도록 숨겨서 키웁니다.
"개똥참외도 먼저 본 놈이 임자다" 하는 속담이 있듯이 먼저 본 사람이 따 먹으면 그만이니까요.
개똥참외 따먹는 것은 참외 서리도 아닙니다.
원천적으로 거름이 잘된 참외는 잘 자랍니다만,아무래도 철이 지났으므로 기후가 맞지 않아서 열매는 시원치 않습니다.
그저 두세개 열리는데다가 크기도 어른 주먹만한 정돕니다.
그게 익으면 농부는 남이 따갈세라 얼른 따다가 자식들 먹입니다.
개똥참외는 으례히 애들만 먹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아니면 어른들은 참외밭에서 많이 먹고 오는 줄 알았습니다.
이게 개똥참외입니다.
그걸 심은(?) 사람이나 가꾸고 따먹은 사람이나 그게 "개똥"참외가 아니란 걸 다 압니다.
정말 "개똥"참외라면, 개가 참외 먹고 똥눈 자리에 나온 참외라야 합니다.
그런데 개가 참외 먹는것, 저는 못봤습니다.
사람이 해놓고 민망하니까 개한테 슬쩍 미룬겁니다.
개는 말을 못하니까 아니라고도 못합니다.
아무 잘못없는 개를 나무랐지만, 그 개똥참외는 사람이 먹습니다.
철지난 참외지만 귀했고, 맛있었습니다.
요즘은 개똥참외를 못봤습니다.
철 아니고 이 땅 것 아닌 과일이 흔하게 팔리는 요즘, 그 때깔 좋은 과일들 놔두고 문득 개똥참외가 먹고 싶습니다.
----- 달빛받은 박꽃----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풍 (0) | 2015.10.21 |
---|---|
누가 백두대간 산봉우리의 이름을 더럽히는가? (0) | 2015.10.17 |
이름, 그리고 대화명 (0) | 2010.09.21 |
1970 겨울 (0) | 2010.09.21 |
1970 가을 (0) | 2010.09.21 |